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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건강과 은혜

[뮤지컬 '평양 마리아' 공연 관전 포인트] 실화를 바탕으로 탈북 기독교인의 실상 담아

by 한줌의 짧고 소박한 이야기들을 담아냄 201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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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평양 마리아' 공연 관전 포인트]

 

실화를 바탕으로 탈북 기독교인의 실상 담아

 

 

 

 

 

             한 여성이 남한 노래 들었다고 단련대에 끌려가고 가정은 풍비박산


             중국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예수를 만나 결국 북한에서 순교한 내용


             무대에는 다섯 명만 등장하지만 영상 가미로 마치 대작을 보는




<평양 마리아>는 북한 수용소를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2006)를 만든 정성산(45) 감독의 신작이다.

 

정 감독은 뮤지컬을 만든 후 “통·기·타(‘통일을 위해 기독교 청년들이여 타올라라’의 준말) 정신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뮤지컬을 보신 분들 대부분이 극의 완성도에 만족하고 사명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뮤지컬을 만들기까지
<평양 마리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2007년 <요덕스토리> 공연이 한창일 때, 정 감독은 중국 연길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탈북 여성 정리화(본명 김영숙) 씨가 정 감독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주고받길 수차례, 서로 친해졌을 즈음 정리화 씨는 돈을 보낼 테니 중국에서 고생하는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꼭 작품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

이후 정 씨는 800만 원(중국 돈 5만 위안)을 보냈다.


정리화 씨는 평양에서 태어나 소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남한 노래 ‘사랑의 미로’에 빠진다. 남한 노래를 듣는 것은 범죄인 그곳에서 노래를 듣는 것이 발각돼 신의주 노동단련대로 추방된다.

그 후 쌍둥이 아기들이 굶어 죽자, 결핵에 걸린 남편이라도 살리려 중국으로 탈북한다.

 하지만 중국 인신매매범들에게 잡혀, 나이 많은 한족에게 강제로 팔려갔다가 간신히 탈출하여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정리화 씨가 어찌나 미인이었는지, 중국 공안들도 그녀를 애인으로 삼으려고 혈안이었다. 그 덕에 정리화 씨는 많은 돈을 벌었고, 중국 당 간부의 정부(情婦)로 살았다. 그러던 중 정리화를 빼앗긴 중국 공안의 밀고로 강제북송 될 위기에 처하는데, 다행히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북한 보위부원들을 매수해 빠져나왔다.


그 사이 남편은 사망하고 정리화 씨는 나이 든 중국인의 집에 찾아가 몸을 파는 ‘콜걸’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음지의 삶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시 북한 체포조에게 붙잡힌다. 그들에게 매를 맞아 뱃속 아기를 잃게 되고, 그 상실감에 자살을 결심.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졌는데, 죽지 않았다.

이후 연길에 있는 작은 기도원에서 하나님과 만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달았다. 정 감독을 만난 것도 이때쯤이다.


정 감독은 정리화 씨를 한국에 오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탈북 여성으로서 겪은 슬프고 서러운 이야기들을 전부 들었다.

정 감독은 2009년 정리화 씨가 들려준 이야기를 중심으로 <평양 마리아>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후 시나리오 완성을 알리려 애썼는데, 정 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10년 11월이 돼서야 한 탈북 여성에게서 정 씨 소식을 들었다.


중국 연길의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나 성경 외우는 재미를 느끼며 한국에 갈 꿈을 꾸던 정리화 씨는, 기도원이 발각되자 훈춘으로 옮겨 한국행을 준비한다. 그런데 어떤 감동이 들었는지 가진 돈 전부를 털어 미원과 설탕, 담뱃가루를 사선 성경책을 찢은 종이에 일일이 포장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이후 신의주 장마당과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시작했다.


중국을 오가며 성경책 장사를 몇 번 더 하다 체포되어 평안남도 승호리 종교수용소(하나님을 믿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수용소)에 갇혔다.

정리화 씨는 수용소 안에서도 전도했다.

안전보위부가 그녀를 나무에 매달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라!”고 강요할 때마다 정리화 씨는 성경 말씀을 외쳤고, 그때마다 보위부는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열흘 후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영상 통한 다양한 공간 연출
정 감독은 탈북 여성이 전한 정리화 씨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평양 마리아> 시나리오는 책상 서랍에 4년간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2013년 6월, 북한 김정은이 북한 사람 40명을 공개 처형했는데, 제일 먼저 처형된 사람이 성경 소지자와 기독교 전도자였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정 감독은 정리화 씨 꿈을 꾸다 벌떡 일어나 <평양 마리아> 대본을 꺼내 들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정리화 씨가 보내준 중국 돈 5만 위안을 떠올리고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뮤지컬 <평양 마리아>를 만들어 2014년 4월 15일(김일성 생일) 대학로에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뮤지컬 <평양 마리아>는 그렇게 탄생했다.

줄거리는 정리화 씨 이야기와 똑같지 않지만, 지금도 북한과 중국 땅 여기저기서 탈북 여성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이야기다.


<평양 마리아>는 뮤지컬 중간마다 영상을 활용한다.

 배경이 된 평양 장마당, 중국 옌지 시내 모습을 영상에 담아 다양한 공간을 연출한다.

뮤지컬에서 정리화의 남편, 당 간부의 대사도 영상으로 처리한다.

정리화가 노래하면 화면 속의 남자가 화답하는 방식으로 이중창을 들려준다.

 미디어아트(Film)와 공연예술(Musical)의 결합 ‘필름-컬(Film-cal)’을 구현한다.


정 감독은 “무대에는 5명만 등장하지만 50여 명이 출연하는 효과를 내려고 영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와 뮤지컬에서 영상을 활용하는 방식은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다.

 무대 장치를 보완하고 출연진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평양 마리아>처럼 영상과 공연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재연하는 극은 드물다.

이는 소극장에서 공연한다고 해도 관객은 웅장한 대작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뮤지컬 <평양 마리아>는 9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에서 평일에는 저녁 8시(월요일 쉼), 토요일에는 오후 3시와 7시, 주일은 오후 3시에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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